임진왜란 김면 장군 활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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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Andy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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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7-07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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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도의병 총대장 **김면(金沔, 1541 – 1593)** ― ‘송암(松庵)’이라 불린 학자·무장의 두 얼굴
| 구분 | 내용 |
| ---------- | ------------------------------------------------------------------------------------ |
| **본관·자·호** | 고령(高靈) 김씨 · 자 **지해(志海)** · 호 **송암(松庵)** ([encykorea.aks.ac.kr][1]) |
| **사제 관계** | 남명 조식·퇴계 이황 문하에서 성리학과 실천 유학을 익힘 ([encykorea.aks.ac.kr][1]) |
| **거병 시점** | 1592 년 4 월 25 일, 고령 개진면 양전리에서 가동 (家僮)·친척 700명과 첫 창의 ([goryeong.grandculture.net][2]) |
| **의병 규모** | 일주일 만에 2 천 → 6 천 명(거창·고령 연합), 전투마다 향민이 자발 합류 ([goryeong.grandculture.net][2]) |
| **대표 승전** | 우척현·연강·개산포·우두령·지례·의령 등 30여 차례 – “영남 수복 1차선” |
| **최종 직위** | 1593 년 1월 **경상우도병마절도사** – 4도 의병 총괄 지명 ([encykorea.aks.ac.kr][1]) |
| **순국** | 같은 해 3월(음 1월) 병사—장기간 전투로 인한 열병 · 피로가 원인 ([goryeongnews.com][3]) |
---
## 1. 거병의 배경 — “학자에서 의병장으로”
* **산림 유학자**로 은거하던 김면은 왜군이 부산을 넘어 상주·한성을 점령하자 즉시 사재를 털어 활·화살·군량을 마련했다.
* 고령·거창 일대 유생·향리가 “송암 선생이 떨쳐 일어났다”는 소식을 퍼뜨리며 병력과 군수품이 급속히 모였다. ([goryeong.grandculture.net][2])
## 2. 주요 전투 타임라인
| 월·일(1592) | 전투·지역 | 전술 하이라이트 | 결과 |
| ----------- | -------------------- | ---------------------------- | ----------------------------------------------------------- |
| **5 / 11** | **우척현**(거창) | 첫 실전—산능선 궁시 매복 | 왜군 선발대 격파, ‘홍의장군 곽재우’ 부대와 연락선 확보 ([ko.wikipedia.org][4]) |
| **6 / 09** | **개산포 대첩**(합천 황강) | 밤낮 교대 궁시 사격 + 불화살 | 왜군 운송선 30척·군량 수송대 소각 ([goryeong.grandculture.net][2]) |
| **7 / 17** | **우두령 전투**(김천·거창 경계) | 좌·우 능선 2,000 매복 → 낙석·화살 한꺼번에 | 1,500 중 半 이상 섬멸, 후방 보급로 차단 ([gimcheon.grandculture.net][5]) |
| **7 / 29** | **지례 야습**(김천) | 야간 삼면 포위 + 횃불 교란 | 적 주둔부대 격멸, 전라도 남하로 완전 봉쇄 ([goryeong.grandculture.net][2]) |
| **8 – 10월** | **금산·의령·무계 전투** | ‘T자 교통로’ 점·탈환 | 합천군수 임명, 1도 군 통솔권 확보 ([ncms.nculture.org][6]) |
> **전술 키워드**
> ① 강·고개 ‘Y·T 요충’ 매복 ② 현지 민·향도 정보전 ③ 화약·궁시 병행 교차사격
## 3. 리더십·전략의 특징
1. **학문·윤리 기반 지휘** – 병사·유생을 함께 편제해 *“문장·무장 일체”* 를 추구, 약탈 금지·군율 엄정으로 민심 확보. ([goryeong.grandculture.net][2])
2. **연합전 선도** – 곽재우·황응남·김시민 등과 **지역 연합 군영**을 꾸려 지휘계통을 정돈, 내분을 조정해 싸움에 집중. ([goryeong.grandculture.net][2])
3. **보급로 차단 집중** – 대규모 성 탈환보다 교통·수운 요지를 끊어 일본군 기동력을 갉아먹는 ‘게릴라+전략거점’ 전법. ([gimcheon.grandculture.net][7])
## 4. 순국과 추모
* 1593 년 금산 진군 직전 열병(장티푸스 추정)으로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 는 유언을 남기고 53세에 서거. ([encykorea.aks.ac.kr][1], [goryeongnews.com][3])
* 고령 쌍림면 칠등리 **송암묘**에 안장, 후대에 **정문(旌門)·추향제** 제정.
* 조정은 “영남 3대 의병장” 김면·곽재우·정인홍을 합칭해 표창했으며, 우두령 정상엔 ‘김면 장군 공원’·승첩비가 세워져 매년 추모제가 열린다. ([facebook.com][8])
## 5. 역사적 의의
| 의의 | 설명 |
| -------------- | ------------------------------------------------ |
| **영남 전선의 ‘끈’** | 한양·전라도로 이어지는 WHY군 보급축을 연속 차단, 남부 방어선 유지에 결정적 기여. |
| **연합 의병 모델** | 유생·향군·관군을 묶어 체계적 지휘—훗날 충청·전라 의병이 같은 형식을 채택. |
| **학자·무장의 통합상** | 남명·퇴계 사상을 실전에 옮긴 예—조선 유학이 ‘병학(兵學)’으로 확장된 사례로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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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 정리
> **김면**은 “산과 강을 무기로, 민심을 군량으로” 활용해 영남 전선을 지켜 낸 **실천 유학자이자 경상 의병의 총사령관**이었다. 그의 매복·연합 전술은 임진왜란 내내 조선 의병의 교과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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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영상 자막, 지도, 혹은 김면 유적 답사 코스를 원하시면 말씀 주세요!)*
[1]: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9101?utm_source=chatgpt.com "김면(金沔)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https://goryeong.grandculture.net/goryeong/toc/GC02900793?utm_source=chatgpt.com "김면 - 디지털고령문화대전"
[3]: https://www.goryeo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012&utm_source=chatgpt.com "김면(金沔)의 생애와 의병활동을 하게 된 동기 - 고령신문"
[4]: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B%A9%B4?utm_source=chatgpt.com "김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5]: https://gimcheon.grandculture.net/gimcheon/toc/GC03200482?utm_source=chatgpt.com "우두령 전투 - 디지털김천문화대전"
[6]: https://ncms.nculture.org/righteous-army/story/4080?utm_source=chatgpt.com "영남 3대 의병장 김면 유적 - 지역N문화"
[7]: https://gimcheon.grandculture.net/gimcheon/toc/GC03200103?utm_source=chatgpt.com "우두령 - 디지털김천문화대전"
[8]: https://www.facebook.com/story.php?id=100064519371491&story_fbid=1066298615530774&utm_source=chatgpt.com "[영상기자단] 웅양면에서 경북 김천 대뎍면으로 넘어가는 우두령 고개 ..."
| 구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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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자·호** | 고령(高靈) 김씨 · 자 **지해(志海)** · 호 **송암(松庵)** ([encykorea.aks.ac.kr][1]) |
| **사제 관계** | 남명 조식·퇴계 이황 문하에서 성리학과 실천 유학을 익힘 ([encykorea.aks.ac.kr][1]) |
| **거병 시점** | 1592 년 4 월 25 일, 고령 개진면 양전리에서 가동 (家僮)·친척 700명과 첫 창의 ([goryeong.grandculture.net][2]) |
| **의병 규모** | 일주일 만에 2 천 → 6 천 명(거창·고령 연합), 전투마다 향민이 자발 합류 ([goryeong.grandculture.net][2]) |
| **대표 승전** | 우척현·연강·개산포·우두령·지례·의령 등 30여 차례 – “영남 수복 1차선” |
| **최종 직위** | 1593 년 1월 **경상우도병마절도사** – 4도 의병 총괄 지명 ([encykorea.aks.ac.kr][1]) |
| **순국** | 같은 해 3월(음 1월) 병사—장기간 전투로 인한 열병 · 피로가 원인 ([goryeongnews.com][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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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거병의 배경 — “학자에서 의병장으로”
* **산림 유학자**로 은거하던 김면은 왜군이 부산을 넘어 상주·한성을 점령하자 즉시 사재를 털어 활·화살·군량을 마련했다.
* 고령·거창 일대 유생·향리가 “송암 선생이 떨쳐 일어났다”는 소식을 퍼뜨리며 병력과 군수품이 급속히 모였다. ([goryeong.grandculture.net][2])
## 2. 주요 전투 타임라인
| 월·일(1592) | 전투·지역 | 전술 하이라이트 |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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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11** | **우척현**(거창) | 첫 실전—산능선 궁시 매복 | 왜군 선발대 격파, ‘홍의장군 곽재우’ 부대와 연락선 확보 ([ko.wikipedia.org][4]) |
| **6 / 09** | **개산포 대첩**(합천 황강) | 밤낮 교대 궁시 사격 + 불화살 | 왜군 운송선 30척·군량 수송대 소각 ([goryeong.grandculture.net][2]) |
| **7 / 17** | **우두령 전투**(김천·거창 경계) | 좌·우 능선 2,000 매복 → 낙석·화살 한꺼번에 | 1,500 중 半 이상 섬멸, 후방 보급로 차단 ([gimcheon.grandculture.net][5]) |
| **7 / 29** | **지례 야습**(김천) | 야간 삼면 포위 + 횃불 교란 | 적 주둔부대 격멸, 전라도 남하로 완전 봉쇄 ([goryeong.grandculture.net][2]) |
| **8 – 10월** | **금산·의령·무계 전투** | ‘T자 교통로’ 점·탈환 | 합천군수 임명, 1도 군 통솔권 확보 ([ncms.nculture.org][6]) |
> **전술 키워드**
> ① 강·고개 ‘Y·T 요충’ 매복 ② 현지 민·향도 정보전 ③ 화약·궁시 병행 교차사격
## 3. 리더십·전략의 특징
1. **학문·윤리 기반 지휘** – 병사·유생을 함께 편제해 *“문장·무장 일체”* 를 추구, 약탈 금지·군율 엄정으로 민심 확보. ([goryeong.grandculture.net][2])
2. **연합전 선도** – 곽재우·황응남·김시민 등과 **지역 연합 군영**을 꾸려 지휘계통을 정돈, 내분을 조정해 싸움에 집중. ([goryeong.grandculture.net][2])
3. **보급로 차단 집중** – 대규모 성 탈환보다 교통·수운 요지를 끊어 일본군 기동력을 갉아먹는 ‘게릴라+전략거점’ 전법. ([gimcheon.grandculture.net][7])
## 4. 순국과 추모
* 1593 년 금산 진군 직전 열병(장티푸스 추정)으로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 는 유언을 남기고 53세에 서거. ([encykorea.aks.ac.kr][1], [goryeongnews.com][3])
* 고령 쌍림면 칠등리 **송암묘**에 안장, 후대에 **정문(旌門)·추향제** 제정.
* 조정은 “영남 3대 의병장” 김면·곽재우·정인홍을 합칭해 표창했으며, 우두령 정상엔 ‘김면 장군 공원’·승첩비가 세워져 매년 추모제가 열린다. ([facebook.com][8])
## 5. 역사적 의의
| 의의 | 설명 |
| -------------- | ------------------------------------------------ |
| **영남 전선의 ‘끈’** | 한양·전라도로 이어지는 WHY군 보급축을 연속 차단, 남부 방어선 유지에 결정적 기여. |
| **연합 의병 모델** | 유생·향군·관군을 묶어 체계적 지휘—훗날 충청·전라 의병이 같은 형식을 채택. |
| **학자·무장의 통합상** | 남명·퇴계 사상을 실전에 옮긴 예—조선 유학이 ‘병학(兵學)’으로 확장된 사례로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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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 정리
> **김면**은 “산과 강을 무기로, 민심을 군량으로” 활용해 영남 전선을 지켜 낸 **실천 유학자이자 경상 의병의 총사령관**이었다. 그의 매복·연합 전술은 임진왜란 내내 조선 의병의 교과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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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영상 자막, 지도, 혹은 김면 유적 답사 코스를 원하시면 말씀 주세요!)*
[1]: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9101?utm_source=chatgpt.com "김면(金沔)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https://goryeong.grandculture.net/goryeong/toc/GC02900793?utm_source=chatgpt.com "김면 - 디지털고령문화대전"
[3]: https://www.goryeo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012&utm_source=chatgpt.com "김면(金沔)의 생애와 의병활동을 하게 된 동기 - 고령신문"
[4]: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B%A9%B4?utm_source=chatgpt.com "김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5]: https://gimcheon.grandculture.net/gimcheon/toc/GC03200482?utm_source=chatgpt.com "우두령 전투 - 디지털김천문화대전"
[6]: https://ncms.nculture.org/righteous-army/story/4080?utm_source=chatgpt.com "영남 3대 의병장 김면 유적 - 지역N문화"
[7]: https://gimcheon.grandculture.net/gimcheon/toc/GC03200103?utm_source=chatgpt.com "우두령 - 디지털김천문화대전"
[8]: https://www.facebook.com/story.php?id=100064519371491&story_fbid=1066298615530774&utm_source=chatgpt.com "[영상기자단] 웅양면에서 경북 김천 대뎍면으로 넘어가는 우두령 고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