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김천 거창 우두령 전투 > History

Go to Body
All Search in Site

Member Login

Count Vister

Today
1,405
Yesterday
731
Maximum
2,319
All
204,101

History

임진왜란 김천 거창 우두령 전투

Page Info

Writer AndyKim Hit 32 Hits Date 25-07-07 22:17
Comment 0 Comments

Content

### 우두령 전투 개요

* **일시** : 1592 년 7 월 17 일(음 6 월 23 일)
* **장소** : 경북 김천시 대덕면 내감리와 경남 거창군 웅양면 경계 ‘우두령(牛頭嶺)’ 고갯길
* **교전 세력** :

  * **조선 의병 2,000명** ― 총지휘 김면(金沔), 좌부장 황응남, 우부장 김준민, 복병장 이형, 종사관 곽준·문위
  * **일본군 1,500명** ―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계통 부대 (제6진 잔여 병력)
* **전투 성격** : 산악 매복-기습전을 통한 보급로 차단 작전 ([gimcheon.grandculture.net][1])

---

## 1. 전략적 배경

임진왜란 초기, 왜군 제6진은 경상 우도(현 김천·거창 일대)에 흩어져 **전라도 진입** 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곽재우·김면 등 의병에게 진출로를 차단당하자, 거창·무주 방면 우회로(우두령 → 무주 구간)를 택합니다. 의병 지휘부는 “우두령에서 막으면 호남로가 완전히 닫힌다”고 판단해 선제 매복을 결정했습니다. ([gimcheon.grandculture.net][1])

---

## 2. 지형 · 배치

우두령은 해발 약 680 m의 V자형 마루로, 양쪽 사면이 급하고 길이 좁아 **행군 대열이 늘어질 수밖에 없는** 길목이었습니다. 김면은 양편 능선과 고개 윗마루에 부대를 3층으로 배치하고, 산척(山尺·산간 사냥꾼)들을 척후로 삼아 활·장궁 지원사격을 준비했습니다. ([gimcheon.grandculture.net][2])

---

## 3. 전투 경과(타임라인)

| 시각          | 전개                          | 결과                    |
| ----------- | --------------------------- | ---------------------- |
| **07 : 00** | 왜군 선발대 고개 진입                | 의병, 은밀히 대열 길이·무장 확인    |
| **08 : 30** | 본대가 고개 정상에 올라섰을 때 **봉화 신호** | 좌·우 능선 매복군 일제 사격·낙석 투하 |
| **09 : 00** | 기습 1차 성공 후, 황응남  · 김준민이 돌격  | 왜군 중앙 대열 붕괴, 퇴로 혼란    |
| **10 : 00** | 복병장 이형, 후미 차단 중 전사          | 후위 왜군 일부 탈출 성공        |
| **정오**      | 나머지 일본군 산중 도피·패주            | 왜군 전사·포로 다수, 의병 피해 경미  |

※ 기록마다 전과 차이가 있으나 『김천시사』는 “적 1,500 중 절반 이상 전사·포획”으로 서술합니다. ([gimcheon.grandculture.net][1])

---

## 4. 전투 결과와 의의

1. **전라도 축선 차단**
  우두령이 막히면서 왜군 제6진은 더 이상 호남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지례·김산 일대에서 고립됐습니다. 후방 보급로가 끊기자 곧장 서·남부 공세가 주춤해집니다. ([gimcheon.grandculture.net][1])

2. **의병 연합 승리 모델 제시**
  김면(충청 의병)·황응남(상주 관군)·거창 선비군 등이 지휘 체계를 통합해 ‘지역 연합전’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3. **산악 매복전의 교과서**
  좁은 고개를 ‘깊이 매복–높이 타격–퇴로 차단’ 3단계로 운용한 대표 사례로 평가됩니다. 산척 사수(射手)들의 궁시 지원도 기록에 자주 언급됩니다. ([gimcheon.grandculture.net][1], [gimcheon.grandculture.net][2])

4. **인물 재평가**
  황응남은 제포만호 시절 패주 오명을 이 전투로 씻었고, 김준민은 대궁(大弓) 사격 공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복병장 이형은 순절해 현지에서 제향을 받습니다.

---

## 5. 현장과 유적

* **우두령 옛길** : 국도 3호선이 개통되기 전 김천-거창 사이 최단로. 현재는 농로 수준이지만 고개 마루와 매복지 추정지점에 표석이 남아 있습니다.
* **전승비** : 김천시 대덕면 연화리 시비공원 내 ‘우두령 의병승첩비’(1999)
* **답사 포인트** : 고개 정상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는 급경사길(옛길 흔적)과 능선 자연 낙석대를 함께 보면 매복 지형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

## 6. 한눈 정리

> **우두령 전투(1592.7.17)** 은 김천 의병 2,000명이 험준한 고개에서 일본군 1,500명을 기습-포위하여 **호남 진격로를 끊어 낸 산악 매복전**입니다.
> 작지만 결정적인 승리 덕에 경상 서북부-전라도 방어선이 살아남았고, ‘지역 의병 연합+지형 활용’ 전술이 최초로 빛난 전투로 기억됩니다.

---

### 참고 문헌·자료

* 『김천시사』 (김천시, 1999)
* **디지털김천문화대전** 〈우두령 전투〉, 〈우두령〉 항목 ([gimcheon.grandculture.net][1], [gimcheon.grandculture.net][2])
* 김천시 대덕면사무소 〈지명유래·우두령〉 ([gc.go.kr][3])

궁금한 점이나 영상 / 자막 형식 요약이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1]: https://gimcheon.grandculture.net/gimcheon/toc/GC03200482 "우두령 전투 - 디지털김천문화대전"
[2]: https://gimcheon.grandculture.net/gimcheon/toc/GC03200103?utm_source=chatgpt.com "우두령 - 디지털김천문화대전"
[3]: https://www.gc.go.kr/district/daedeok/contents.do?mId=0204000000&utm_source=chatgpt.com "지명유래 - 김천시 대덕면"

List of comments

No comments

Copyright © SaSaSak.net All rights reserved.